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데 전쟁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> 제노사이드를 국가의 통합적 계획에 의한 집단의 전면적 혹은 부분적 학살이라고 정의할 경우, 방데 학살은 제노사이드 범주에 들어간다. 그러나 제노사이드의 범위를 이렇게 확대하면 사실상 모든 학살이 제노사이드에 속하게 되어 제노사이드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. 제노사이드는 ‘다른 종족의 전면적인 파괴를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학살’로 한정되어야 한다. 이렇게 본다면, “프랑스인에 의한 프랑스인의 제노사이드”라는 말은 애당초 성립하지 않는다. '''방데 학살이 제노사이드인가를 판별하는 논쟁은, 레날 세셰르와 장 클레망 마르탱의 논쟁에서 살펴보았듯이, 사실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기 쉽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방데 전쟁에서 엄청난 폭력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다. 폭력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프랑스혁명은 아무런 단절을 가져오지 않았다. 구체제의 폭력보다 더 가혹하고 야만적인 폭력이 ‘자유-평등-형제애’를 외친 혁명가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것이다. 이러한 의미에서, 프랑스 혁명은, 한나 아렌트가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을 비교하며 평가했듯이, 실패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.''' > ----- > 김응종 「방데전쟁의 폭력성-학살인가 제노사이드인가?」 군사(軍史) 제97호(2015.12), 421~422쪽 [[1793년]] [[3월 3일]]부터 [[1796년]] [[7월 16일]]까지 [[프랑스 제1공화국]]에 저항해 일어난 봉기. [[파일:D141E11A-688F-44C1-9320-BF118194BEC2.jpg]] 빨간색 지역이 방데 봉기의 시발점이자 중심지가 방데였기 때문에 방데 전쟁, 방데 반란이란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사실 방데 주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은 참여하지 않았다. 실제로는 루아르앵페리외르(Loire-Inférieure)[* 1957년 루아르아틀랑티크(Loire-Atlantique)로 변경], 멘에루아르(Maine-et-Loire), 되세브르(Deux-Sévres), 방데(Vendée) 등 [[프랑스]] 서부에 존재하는 4개 주에 걸쳐 일어났다. 과거에는 방데 반란이라 불리며 반혁명, 반동적 반란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으나 근래에는 방데 전쟁이라는 중립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